일요일 오후 세시에는 언제나 티타임을 가졌다. 미카가 이 집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쭉 이어져오는 일종의 규칙이었다. 슈는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았다. 두시 삼십분. 손에 들고 있던 것을 그대로 내려두고 그는 몸을 일으켰다. 제 자리에 앉아 봉제인형을 고쳐주는 데 심혈을 기울이던 미카는 그 기척을 알아차리고 파뜩 고개를 들어올렸다. ...
카게히라 미카는 무서운 것을 좋아한다. 예를 들면, 해골이라던가, 좀비라던가, 프랑켄슈타인이라던가. 기괴하게 생긴, 모두가 무섭다고 말하는 그것들을 미카는 귀여운 것들과 더불어 좋아했다. 그렇게 탄생하는 미카의 미적 감각을 도통 이해할 수 없다고 그의 스승은 종종 말하곤 했다. 여기서 누구나 착각하곤 하는데, 미카는 ‘무서운 것’을 좋아하지, ‘무서움’을 ...
어쩐지 주위가 어수선하다. 슈는 묘하게 끈질긴 시선을 느끼며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몇 번 눈을 깜빡이다가 무심코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면 색이 다른 두 눈동자와 딱 마주치는 것이다. 동그랗게 떠서 저를 보고 있는 눈과 몇 초간 눈을 마주치고 있던 그는 슬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뭐하고 있는 것이야, 너는.” “스승님아, 인났나!” 반짝반짝, 그저 ...
“응앗?” 합, 미카는 다급히 두 손으로 제 입을 막았다. 교외 아르바이트로 귀가시간이 늦어져 서둘러 집에 돌아온 참이었다. 거실 불이 켜져 있어 제 스승보다 늦게 돌아온 건가 싶어 찔끔했는데. 미카는 괜스레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곤 살금살금 걸음을 옮겼다. 안락한 삼인용 소파에는 슈가 있었다. 앉아 있다가 누운 것처럼 옆으로 쓰러져있는 모양이다. 흐트러지는...
사각, 사각, 불규칙적으로 가위질 소리가 들렸다. 얇은 머리카락이 가위 날에 조금씩 잘리는 소리에 조금 소름이 돋는 한편 어쩐지 간지러운 느낌이 들어 미카는 흐흐, 입 속으로 웃었다. 날씨가 좋은 주말 낮에는 머리카락을 정리한다. 하나의 규칙처럼 정해진 둘만의 약속이었다. “두 주 동안 비가 와서 손을 안 댔더니 엉망이구나.” “응앗, 그런가?” 무심코 들...
솔직히 말해서, 마키 소스케에게 ‘시노노메 야마토가 밴드를 그만둘 수도 있다’는 가정은 성립조차 불가능했다. 대타로 들어온 몸이었지만 소스케 자신이 고른 목소리였고, 꽤 긴 시간 같이 유대를 쌓았으며, 무엇보다 야마토 스스로 블레이스트를 천하제일로 만들겠다는 열정을 품고 있지 않았던가. 그래서 더욱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 그는 제 앞에 앉은 야마토...
유독 더위가 몸을 짓누르던 날이었다. 하필이면 찌는 듯한 더위에 에어컨이 망가져버릴 건 뭐람, 소스케는 속으로 온갖 불만을 토해내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제법 길게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작게 모아 묶어도 얼굴 앞으로 떨어지는 머리가 도저히 주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서너 번, 시야를 가리고 더위를 재촉하는 머리카락을 짜증스럽게 걷어내던 소스케는 끝내 손...
때때로 환경은 마법을 부린다. 그런 말도 있지 않던가, 눈이 내릴 때 세배 예뻐 보인다는, 그런 류의 농담들. 벚꽃 잎이 하늘하늘, 눈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옅은 분홍빛일 그것은 어둑한 밤과 중간 중간 켜진 가로등의 조화로 인해 제 색을 잃어 흡사 눈처럼 보였다. 그래서였다. 저보다 조금 앞서 걷고 있는 뒷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것은. 언제나처럼 계기는...
'시간의 늪' 번외 “좋아하지?” 멈칫, 도시락을 비우던 젓가락질이 멈추었다. 한 몸이란 걸 인증하듯 손과 함께 멈춘 입을 그대로 다문 채 고개를 들면 턱을 괴고 그를 보고 있는 녹색 눈동자와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두어 번 눈을 깜빡일 시간이 흐르고 다시 입을 움직여 음식을 씹기 시작한 소스케는 자연스럽게 질문을 흘리며 시선을 도로 도시락을 향해 내려 ...
'너를 위한 히어로' 번외 ‘살면서 제일 후회되는 일이 있나요?’ 불 꺼진 방 안, 홀로 빛을 발하는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에 남자는 정처 없이 떠돌고 있던 시선을 옮겼다. 높은 음성의 내레이션으로 흐른 문장은 작은 자막으로 화면 상단에 위치했고, 사람들이 나와 그에 대한 답을 말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하지 않았던 것, 돈을 써...
BGM :: BLAST - Lullaby 요즘 들어 뭔가 이상하다. 계속해서 시선이 느껴진다거나, 주위에서 인기척이 사라지지 않는다거나. 소스케는 스스로가 이런 쪽으로 예민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런 쪽이란 건 그러니까, 자신에게 향하는 남들의 관심 같은 것 말이다. 강하게 말하면 스토킹 같은, 뭐 그런 쪽. 그는 여전히 찜찜하게 뒤통수에 들러붙는 ...
“사에키 군, 매니큐어 칠해보지 않을래?” 드문 일이었다. 꿈에 그리던 것과 같이 여자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츠바사는 고개를 기울였다. 얼굴은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사에키 군, 손이 예쁜 편이니까 한번 쯤 발라보고 싶었거든!’ 긴장으로 뛰는 가슴을 간신히 가라앉힌 그는 같은 반의 여자아이들이 건네는 권유 아닌 명령에 멋쩍은 웃음을 걸며 얌전히 그녀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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